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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story/역사 문학 그림

중국 공산당의 역사적 배경,이념

1921년에 성립한 중국공산당의 역사는 1991년으로 70년이 되었다.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무장한 중국 노동자계급의 혁명정당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유럽에서 탄생되었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동으로 쓴 ≪공산당 선언≫이 출판되면서 탄생하였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는 현재로 143년이 되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저작에서 자본주의사회 발전의 필연적인 추세에 근거하여, 계급이 소멸되는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은 3가지 발전단계를 경과한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예견하고 설명하였다.
첫번째 단계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광대한 노동인민을 이끌어 폭력적으로 부르주아를 타도, 자신의 통치를 수립하고 자신이 통치계급이 되어 민주를 쟁취하는 단계로, 노동자혁명의 제일보이다. 두번째 단계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정치통치를 이용하여 점차 부르주아의 모든 자본을 탈취하고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 즉 통치계급으로 성장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는 단계이다. 이것은 곧 국민경제를 사회주의로 개조하늘 것이며, 아울러 사회주의 건설을 시작하는 단계이다. 세번째 단계는, 사회주의 개조와 사회주의 건설을 평화롭게 발전시키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이끄는 인민정권과 이미 공유화된 생산수단을 이용하여 가능하면 신속하게 총생산력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장기적인 건설과 개혁의 과정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자체는 부단히 변화하고 부단히 진보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며, 새로운 조건 아래 긴 발전과정을 통해서야 당면의 자본과 토지소유권의 자연법칙에 따른 자연발생적 작용을, 자유롭게 연합된 노동의 사회경제발전법칙에 따른 자연발생적 작용으로 대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광대한 인민의 재능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생산력을 고도로 증가시킬 수 있으며, 집단재산의 모든 원천도 충분히 발현시킬 수 있다. 그리고 부르주아가 다시는 존재할 수도 또 재생산될 수도 업게 할 수 있으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공산주의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전제이다.
마르크스주의가 탄생된 지 71년이 지나고, 러시아의 1917년 10월혁명과 중국에서의 1919년 5·4운동을 거쳐서야 중국에 마르크스주의가 전파되었고, 아울러 이 마르크스주의는 중국의 노동자계급과 광대한 인민들에게 장악되었다. 왜냐하면 전파되었을 당시 중국에 200만 정도의 현대산업 노동자가 있어 노동운동을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와 중국 노동운동이 서로 결합된 산물이었다. 그러나 모택동이 언급하였듯이 중국 인민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습득한 이후 25년이라는 장기간의 시간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제국주의와 그 앞잡이인 중국 지주계급과 관료부르주아의 중국 인민에 대한 통치를 끝장낼 수 있었다.
중국 인민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습득하였다는 모택동의 말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문구를 단순히 암송하였다는 말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인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편원리와 중국혁명의 구체적인 실천을 성공적으로 정확하게 결합시켰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론과 실천을 정확하게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쟁·실패, 재투쟁·재실패, 즉 실천·인식, 재실천·재인식이라는 여러 차례의 반복된 나선형식의 전진과정을 경과해야만 했다.
그리고 실천과 인식의 주체는 개별 지도인물과 지도집단이 아니었고, 당 집단과 노동자계급과 광대한 대중이었다. 그러므로 이론과 실제가 결합되는 과정은 당의 지도와 대중이 결합되는 과정이었으며, 대중으로부터 시작하여 대중 속으로 들어가고, 다시 대중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시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이론과 실제의 결합과 지도와 대중의 결합이라는 순환은 실천적 결과를 통하여 진리가 검증되고 진리가 발전되는, 즉 진리를 견지하고 잘못을 수정하는 자아비판적인 과정이기도 했다. 이론과 실제의 결합(실사구시), 지도와 대중의 결합(대중노선)과 자아비판은 모택동이 ≪연합정부를 논한다≫에서 개괄한 중국공산당이 중국 인민 가운데서 만들어낸 새로운 사업작풍이었다. 이 세 가지는 다른 정당과 구별되는, 중국공산당만이 가진 세 가지 특징이었다. 또한 중국공산당과 중국 인민이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의 승리에서 얻은 세 가지 근본원칙, 즉 모택동사상의 세 자지 근본원칙이었다.
중국공산당 70년의 역사는 위대하고 빛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어렵고 복잡한 것이기도 했다. 이 70년 가운데, 앞의 28년은 당이 중국 인민을 이끌고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을 전개한 단계이며 후반 42년은 당이 중국 인민을 이끌고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을 전개한 단계였다. 신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은 성질이 다른 것이나, 서로 연관된 것이고 서로 연결된 두 개의 과정이었다. 신민주주의혁명은 사회주의혁명의 필요한 준비여고, 사회주의 혁명은 신민주주의혁명의 필연적 추세였다. 이 두가지 혁명의 단계에서 중국공산당은 중국인민을 이끌고 힘차게 투쟁을 전개하여 위대한 성과를 거두었고, 또 심각한 좌절도 경험하였다. 그러나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은 후 중국 인민을 이끌고 계속 전진하였다.
28년간의 신민주주의혁명 중, 당과 중국 인민은 1923년부터 1927년까지의 제1차대혁명 초기와 중기에 중대한 승리를 거두었고, 그 후기, 즉 1927년 상반기에 비통한 실패를 경험하였다. 1927년부터 1937년까지의 10년 동안의 토지혁명기간 중, 전기인 1927년부터 1932년까지는 노동자·농민 홍군이 30만명에 달하는 등 중대한 승리를 거두었고, 중기의 1934년에 다시 제5차 반포위공격과 대장정 초기에는 비통한 실패를 경험하였다. 이와 동시에, 승리와 실패에 대한 경험을 총결산하는 가운데, 또 마르크스주의를 교조화하고 코민테른 결의와 소련 경험을 신성화하는 가운데, 또 마르크스주의를 교조화하고 코민테른 결의와 소련 경험을 총결산하는 가운데,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중국 실제에 결합시키려는, 모택동을 대표로 한 중국공산당의 정확한 이론이 제1차대혁명 중에 싹트고 토지혁명전쟁 전기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31년 준의회의를 거쳐 모택동을 대표로 하는 정확한 노선은 전 당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확립한 이후, 1935년 1월에서 1937년 7월에 걸친 토지혁명전쟁 후기와 1937년 7월에서 1945년 8월까지의 항일전쟁시기에, 모택동사상은 체계화되고 다방면으로 전개되어 성숙한 경지에 다다랐다. 그리하여 중국공산당 70년 역사상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중국의 실제와 결합시키는 첫번째 역사적인 비약이 실현되었다. 즉 당은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하고 무장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신민주주의혁명을 통하여 혁명승리 후 사회주의혁명의 길로 즉각 들어설 수 있는 정확한 길을 찾아내었던 것이다. 모택동사상의 지도 아래, 중국 인민의 혁명역량은 8년 간의 항일전쟁에서 이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장대하게 발전하였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1945년 8월부터 1949년 10월까지의 4년 간의 전국해방전쟁을 거쳐 중국혁명은 결국 전국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노동자계급이 이끄는 노농연맹을 기초로 한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된 것이다. 이 승리는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노동자혁명의 제일보 승리, 즉 정권취득의 승리였다. 이 때부터 중국은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섰으며, 중국 사회는 사회주의 과도기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1949년부터의 42년 간의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 건설단계도 마찬가지로 성공과 실패의 반복된 시련을 겪었다. 이 42년은 4시기로 구분하여 볼 수 있는데, 즉 1949년 10월부터 1956년 9월 당 제8차 전국대표대회 이전가지의 기본적인 사회주의 개조 완성기 7년, 1956년 9월부터 1966년 5월까지의 전면적인 사회주의 건설기 10년, 1966년 5월부터 1976년 10월까지의 문화대혁명 10년, 1976년 10월 이후 사회주의 현대화건설 신시기 10년이 그것이다.
사회주의 개조가 기본적으로 완성되는 7년은 확실히 개가행진의 시기였으며, 1956년부터 중국은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진입하였다. 중국혁명 승리와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이, 과학사회주의가 중국에서 거두고 또 세계정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던 첫번째 위대한 승리였다고 한다면, 1956년 사회주의 개조의 기본적인 완성은, 과학사회주의가 중국에서 거두고 또 위와 동일한 세계적인 의의를 가진 두번째의 위대한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모택동사상이 거둔 빛나는 승리였다. 중국 사회주의의 개조, 특히 자본주의 상공업의 사회주의 개조는 평화적인 방식, 즉 경제적으로는 구매하고 정치적·사업적으로는 자본가에게 적당한 안배를 부여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중국 사회주의사업에서도 서둘러 성공을 구하는 중대한 편차와 순수함을 서둘러 구하려는 편차를 보였다.
1956년 초부터 1957년까지, 모택동과 주은래 등 중국공산당원은 1956년 2월 소련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폭로되었던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소련이 범하였던 잘못된 경험에 비추어 중국 독자의 사회주의 건설 경험을 총결산하고, 중국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 건설방식을 탐색하고, 주요한 성과도 거두었다. 주요한 성과는 다음과 같았다. 즉 민주를 확대하고자아비판을 발전시키는 방식을 채용하고, 여러 방면의 일을 통일적으로 개혁하고 돌보며 적당히 안배하고 국가와 집단, 개인 삼자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는 방침을 채용하고, 장기공존과 상호감독, 그리고 백화제방·백가쟁명의 방침을 채용하며, 중공업과 경공업·농업·연해와 내지·경제건설과 국방건설·중앙과 지방·한족과 소수민족·중국과 외국 등 각 방면에 걸친 관계문제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방침을 채용하였다. 인민 내부의 모순(이것은 사회주의사회의 주요모순이다)을 정확히 처리하여 모든 적극적인 요소를 사회주의 건설에 동원되도록 하며,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전 당과 국가생활 중의 민주집중제를 완비하고, 민주적이며 집중적이고 자유롭고 또 기율 있고 개성을 발전시키며 통일의지가 있는 생기발랄한 정치국면을 조성하였다. 사회주의의 개조에 반대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파괴하는 반혁명분자는 반드시 의법조치하였다. 그러나 원래의 모든 반동계급·반동파에 속하였던 인물에 대해서는 그들의 통치가 전복된 후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파괴행위를 하지 않거나 소란을 피우지만 않는다면, 그들에게 생활의 출로를 부여할 뿐 아니라, 그들을 적극적으로 교육시켜 노동하는 가운데서 법을 준수하는 사회주의 공민으로 개조시켜 소극적인 요소를 적극적인 요소로 변화시켰다. 1956년부터 1957년에 걸친 이 같은 탐색과정을 통해 1978년 12월 11기 3중전회 이후 등소평이 이끈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건설에 관한 이론과 노선의 기본적인 틀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과 중국 인민은 사회주의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데 사상적인 준비와 경험이 결여되어 있었고, 또 반식민지·반봉건사회의 잔재의 영향으로, 그리고 경제·정치·문화·사회 등 다방면에 걸친 소련의 고도의 중앙집권관리체제 형식을 채용함으로써 조성된 위험으로 인하여, 중국공산당은 1951년부터 1978년 12월까지 21년 간 지도사상의 측면에서 사회주의사회의 계급투쟁을 확대하는 잘못을 범하였고, 사회주의 건설과 사회주의 개조의 측면에서는 시급히 성공을 구하는 등의 좌경적인 잘못을 범하였다. 먼저, 1958년부터 1960년까지 3년 간의 대약진운동은 당과 국가 그리고 인민에게 심각한 손실을 주었다. 1961년 하반기부터 1966년 상반기까지 5년 간, 당은 전국인민을 이끌고 국민경제를 조정하고 실제사업 중의 좌경적 착오를 바로잡기 위하여 투쟁하였다. 이 노력은 현저한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등소평이 지적하였듯이, 사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문화대혁명의 발발로 이어졌다. 문화대혁명은 대약진보다 더욱 심각하고 더욱 기간이 긴 전국성의 좌경 착오를 당과 국가, 그리고 인민에게 미쳤다. 등소평은 ≪1957년 이후 중국 당의 중요한 착오는 좌경이었으며, 문화대혁명은 극좌였다≫고 단언하였다.
문화대혁명 10년 간의 큰 재해로 전 당과 전 인민은 크게 깨달았다. 그들은 1976년에 수천, 수백만 명이 참여한 4·5 운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은 같은해 10월에 사인방을 분쇄하고 문화대혁명의 동란을 마무리하는 데 위대한 대중적 기초를 마련하였을 뿐 아니라, 1978년 12뭘 11기 3중전회 이후 모택동 만년의 좌경적 착오를 바로잡고 경제·정치·문화·사회 각 방면에 걸친 고도의 집권적 사회주의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데 위대한 대중적 기초를 다졌다.
11기 3중전회 이후 1982년 9월 제12차 전국대표대회, 1987년 10월 제13차전국대표대회를 거쳐 1990년 12월 13기 7중전회에 이르기까지, 등소평 지도아래 중국공산당은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건설을 확립하였는데,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와 모택동사상의 이론과 노선을 견지·발전시킨 것이었다. 이 시기에 당은 중국의 1950년대 중기의 사회주의 개조의 기본적인 완성에서부터 21세기 중엽의 사회주의 현대화의 기본적인 실현에 이르기까지를 사회주의 초급단계라는 과학적인 논단을 제출하였다. 즉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4항의 기본원칙 견지, 개혁개방의 사회주의 초급단계의 노선, 그리고 일련의 유효한 방침정책을 제출하였던 것이다.
11기 3중전회는 역사와 당면의 실천경험을 신중히 결산하면서,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12개 조의 주요원칙을 개괄하였다.

1. 노동자계급 지도의 노농연맹을 기초로 한 인민민주주의독재를 견지하고, 인민의 대표제도를 부단히 완비하고, 공산당 지도의 다당합작과 정치협상제도를 부단히 완비하고, 광범위한 애국적 통일전선을 부단히 굳건히하고 발전시키며, 사회주의 민주와 사회주의 법제건설을 강화하는 데 노력한다.
2. 사회생산력의 발전을 사회주의의 근본임무로 삼아 현대화건설에 매진하며 부단히 인민의 물질문화생활수준의 향상에 노력한다.
3. 경제·정치체제와 기타 영역의 관리체제를 부단히 완비하는 것을 통해, 중앙·지방·기업과 광대한 노동 인민들의 능동성·적극성과 창조성을 충분히 이끌어낸다.
4. 대외무역관계를 발전시키고 외국자본을 이용하고 그리고 선진기술을 유치하는 등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경제특구·경제개방구를 운영하고 필요한 경제정책과 융통성 있는 조치를 취하여 부단히 대외개방을 확대한다.
5. 사회주의 공유제를 주체로 한 다양한 경제성분이 병존하는 소유제 구조를 견지하고, 개인경제·사영경제와 기타 경제성분이 공유제 경제에 대해 유익한 보충작용을 발휘토록 하고, 아울러 그들을 정확히 관리하고 인도한다.
6. 사회주의의 계획상품경제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계획경제와 시장조절을 상호 결합시키며, 국민경제의 지속·안정·협조발전을 촉진하는 데 노력한다.
7. 노동에 따른 분배를 기축으로 기타 분배방식을 보충하는 분배제도를 실행하고, 성실한 노동과 합법적인 경영으로 부를 축적한 일부 사람과 일부 지역을 허락, 지지하고 먼저 부를 축적한 사람이 아직 부를 축적하지 못한 사람을 돕도록 고무하여, 전체 인민과 전체 지역이 점차 함께 부유해지도록 한다.
8.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모택동사상을 지도사상으로 삼고 조국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계승·발양하며 세계상의 모든 우수한 문화성과를 흡수하여, 전민족의 사상·도덕과 과학·문화소양을 부단히 향상시킴으로써 사회주의 정신문명을 건설한다.
9. 평등호조·단결합작·공동번영의 사회주의 민족관계를 건립, 발전시키고, 민족구역자치제도를 견지, 완비하고 민족차별대우·민족억압·민족분열에 반대한다.
10. 한 국가·두 제도라는 구상과 실천에 따라, 조국의 통일대업을 점차 실현한다.
11. 독립자주적인 평화로운 외교정책을 견지하고 평화공존 5개 원칙의 기초 위에 모든 국가와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며, 패권주의와 강권주의 정치에 반대하고, 피압박 민족과 피압박 인민의 정의로운 투쟁을 지지하고 세계평화를 옹호하며 인류진보사업을 촉진한다.
12. 공산당의 지도를 견지하며 당의 지도제도·지도작풍과 지도방법을 부단히 완비하고 당의 정치·사상·이론과 조직건설을 강화하여, 당을 사회주의 사업의 굳건한 지도핵심으로 성장시킨다.

11기 3중전회 이후 당은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정확한 길을 찾았으며,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이론과 노선을 만들어내었다. 이로써 중국공산당 70년 역사와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중국 실제와의 결합의 두번째 역사적 비약이 실현되었다. 이것은 또한 과학사회주의가 중국에서 취득한 세번째 위대한 승리였다. 현대화하고, 고도의 문명적이며 민주적인 사회주의 국가, 즉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이론·노선의 제출과 그것의 실현은 중국공산당과 중국 인민의 인류에 대한 중요한 공헌이었다.
중국공산당 70년의 역사에서, 중국공산당과 중국 인민이 획득한 신민주주의혁명의 승리, 사회주의 개조의 기본적인 승리와 사회주의 건설의 중대한성과는 모두 실사구시의 사상노선과 대중노선의 사업방침, 그리고 수시로 진리를 견지하고 수시로 잘못을 수정하는 자아비판의 방법을 통하여 획득된 것이었다. 이와는 달리, 당과 인민이 신민주주의혁명 단계에서 맞부딪쳤던 1927년과 1934년 두 번에 걸친 참담한 실패와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 건설단계에서 맞부딪쳤던 3년 간의 대약진운동과 10년 간의 문화대혁명의 심각한 좌절은 모두 실사구시의 사상노선과 대중노선의 사업방침, 그리고 진리견지와 잘못을 수정하는 자아비평이라는 3가지 훌륭한 전통작풍, 즉 반드시 영원히 계승하고 발양시켜야 할 모택동사상의 3가지 근본원칙을 위반하였던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11기 3중전회 이후 수년 간, 당이 집행한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노선과 개혁·개방의 총방침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놀랄 만한 성과를 이미 거두었다.
이 기간에 국민총생산액은 배로 증가하였고 인민생활이 현저히 개선됨으로써 11억 인구의 의식문제는 기본적으로 해결되었다. 1990년대에 중국공산당과 중국 인민은 평균적으로 생활이 안정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분투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목적을 실현한 이후 다음 세기 중엽에는 국가의 사회주의 현대화를 통해 중진국의 국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더욱 분투할 것이다. 중국공산당 70년 간의 옳고 그른 양측면의 풍부한 역사적 경험을 익히고 당의 훌륭한 작풍과 성공의 경칩을 발휘하는 것은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노력에 유효할 것이다.
간단명료한 중국공산당사인 이 책은 이 같은 목적을 위하여 씌어진 것이다. 이 책이 개혁에 뜻이 있고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독자 제위께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70년 간 중국공산당사의 내용이 상당히 풍부하고 매우 복잡한 반면 우리의 수준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러 부분을 잘못 서술하고 소흘히 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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