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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中國을 너무 모른다

[우리는 中國을 너무 모른다] 경제

세계 4위 경제 대국, 한국기업 逆 사냥 나서

세제 혜택 축소 등 우리 투자 여건은 악화

우리가 부품 수출하면 중국이 완제품 만들어

세계 시장에 진출 기업 16000개…

변화 못읽고 직원 해고했다 불이익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세계 4, 한국은 소득 2만달러.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15년 만에 두 나라가 받아 든 성적표다. 두 나라의 경제 교류는 단순 무역에서 그치지 않았다.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고 한국은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는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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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시내의 한 백화점에 전시된 한국 브랜드의 LCD TV를 소비자들이 살펴보고 있다.

1992년 중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380달러로 후진국이었다. 인구가 많기 때문에 경제의 덩치는 커서 당시 세계 7~8위권의 경제였다. 중국은 1992 1월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자”고 다시 강조하기 전까지 시장경제로 갈지조차 헷갈리고 있었다. 1992년 개발도상국의 대표주자였던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740달러로 세계 40위 수준이었다.

 

작년 중국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중국의 1인당 소득은 2001달러로 15년 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은 그 동안 외환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올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게 됐다.

 

두 나라를 동반 성장하게 이어준 끈은 무역과 투자였다. 15년 전 두 나라의 수출과 수입을 합한 교역액은 51억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작년 1344억달러로 26배 증가했다. 특히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급증했다. 중국이 ‘세계의 조립공장’으로 변모하면서 부품과 반제품을 공급하는 한국의 수출이 늘어난 것이다.

 

한국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 11.8%에서 작년 21.3%로 높아졌다. 1992년 우리나라의 수출 대상국 6위였던 중국은 2003년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이 됐다. 2004년엔 최대 교역대상국이 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 중 82%가 중간재이고, 55.8%가 가공무역과 연결돼 있다. 한국이 중국에 부품과 반제품을 공급하면 중국은 그것을 조립해서 세계 시장에 내다팔고 있다는 것이다. 무역 대금은 거꾸로 흐른다. 중국이 미국 등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내면 그 돈은 다시 한국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내면서 한국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다.

 

중국의 성장은 한국이 1997년 말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외환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지 않았던 중국은 아시아를 휩쓴 외환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위안화 가치를 지켜주면서 버팀목이 돼 줬다. 마이너스 성장으로 내수가 가라앉았을 때 전자·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서 판로와 투자처를 찾으면서 회복의 길로 빠르게 나설 수 있었다.

 

중국이 세계적 제품 조립기지가 된 데는 한국의 직접투자가 큰 몫을 했다. 1992년 한국의 대중 직접투자는 14100만달러(170)에 불과했지만 작년엔 33900만달러(2300) 23배 증가했다. 한국은 2002년 미국을 제치고 대중 직접투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대중 직접투자는 한국의 부품 수출 증가로 이어졌다.

 

중국에 진출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95%는 중소기업이다. 이 때문에 국내 중소기업 기반이 사라져 산업이 공동화된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인건비 상승으로 경쟁력을 상실해가던 국내 중소기업들이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존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된 측면도 있다. 수출입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수교 이후 한국 기업이 중국에 세운 법인은 16000개에 달한다.

 

대기업의 진출도 활발하다. 삼성은 1995년 지주회사 격인 중국삼성을 세운 뒤에 그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삼성전자·삼성SDI·삼성화재·삼성물산 등 20여개 계열사가 진출해 있다. 현대차는 2002년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차를 세워 베이징에서 ‘쏘나타’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LG LG전자를 중심으로 LG화학, LG필립스LCD 등이 진출해 있다.
중국 기업의 한국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중국 최대의 가전업체인 하이얼은 2004년 하이얼코리아라는 한국 법인을 설립하고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와인냉장고는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이다.

 

중국 기업의 한국 기업 인수도 이뤄지고 있다. 국의 BOE그룹이 2003년 하이닉스의 LCD 분야 자회사인 하이디스를 4000억원에 인수했고, 상하이자동차는 2004년 쌍용자동차를 5900억원에 사들였다. 그러나 중국 기업이 한국 기업을 인수하면서 기술만 확보하려는 의도가 강했기 때문에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이디스는 결국 대주주와의 갈등 등으로 올해 5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중국 쪽 지분을 모두 소각했다. 은종학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중국 측의 의도는 모른 채 단순한 경제 교류에만 목적을 둔다면 피해를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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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최근 중국 당국이 세제혜택을 축소하고 고용보호를 강화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사정 변화를 읽지 못하고 ‘묻지마 투자’에 나선 기업들은 울상이다. 컨테이너 부품을 생산하는 칭다오 소재 A사의 경우엔 직원 복지 비용이 연 15% 정도 증가하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수출입은행 조사원을 만나 “기업이 섣불리 해고를 할 경우엔 법원에 제소해서 경영 활동에 위축을 가져오고 무마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며 “심하면 파견된 한국인 직원의 신변에도 위협을 느낄 정도”라고 전했다. 김주영 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한국 기업들은 월 2000위안( 30만원)만 주면 중국 사정에 밝은 중국인 고문 변호사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며 “현지 사정을 상세히 알고 기업 활동을 해야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중 경제 관계도 앞으로는 갈등의 요소가 많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사무소장은 “경제대국이 된 중국은 무역 분쟁이 발생하면 ‘우리 길을 가겠다’는 식의 자기 주장을 많이 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한국으로서도 선진국 입장에서 지적재산권·환경 등의 문제에 대해 중국에 ‘할 말은 한다’는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무역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KOTRA는 수교 20년이 되는 2012년 두 나라의 무역액이 200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