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쇠망치 소리...서울에 있는 대장간 마을
▲ 신당1동과 신당5동에 전통 골목길이 남아 있다. 사진은 신당5동. ⓒ 조정래 신당동 서울시 중구에 있는 신당동은 여러 가지로 유명한 게 많다. 가수 DJ DOC가 부른 노래 '허리케인 박'의 무대가 신당동이고, '왕십리 곱창골목'으로 유명한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이 이곳에 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10여 개나 되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대장간 거리 또한 신당동에 있다.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연합이 91년 생활용품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 만든 알뜰가게가 처음 문을 연 곳 또한 신당동이었다. 재활용 가게로 유명한 '아름다운 가게' 1호점(안국점, 2002년 개장)이 생기기 11년 전이었다. 신당동은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종필 김형욱 등 영관장교들과 함께 쿠데타 계획을 짠 곳이 신당동 자택이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아버지 사후 청와대에서 나와 머무른 곳 또한 이 동네다. 최근 정치 재개를 한 전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자택이 있는 곳 또한 신당동이다.이번 대선에 출마한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97년 서울 구기동 주택을 팔고 신당동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으니 신당동과 정치인과의 인연은 적지 않은 셈이다. ▲ 신당1동 주택가. 멀리 동대문 상가가 보인다. ⓒ 김대홍 신당동 정치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락의 대부' 신중현이 1938년 이 곳에서 태어났고, 70년대 전 국민을 흥분케 했던 프로레슬러 김일이 결혼한 뒤 이 곳에서 살았다. 또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22살 때 '경일상회'라는 이름으로 첫 사업(쌀 도산매업)을 시작하기도 했다.어쨌거나 지금껏 세간에 오르내리는 여러 인물들이 이 곳에 둥지를 틀고 있거나 틀었었다. 신당동은 서울 사대문 성벽에 붙어 있는 바깥 마을이었다. 사대문 동쪽 문이 흥인지문이었고, 그 아래 동남쪽에 광희문이 있다. 광희문은 도성에서 사람이 죽을 때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었기 때문에 속칭 시구문(屍口門) 혹은 수구문(水口門)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광희문 바로 바깥쪽 마을이 신당동이다.10여 년 전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선배네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산 쪽으로 한참을 걸어 올라갔더니 두 사람이 간신히 몸을 눕힐 만한 조그만 방에 선배가 살고 있었다. 그 동네가 바로 신당동이었다. 당시 가진 것은 맨몸밖에 없는 20대 청년이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절절함을 그 방에서 느꼈던 기억이 난다.사대문 밖에 붙어 있는 마을, 사대문이 서울이던 시절, 서울에 가장 가까웠던 변두리. 신당동은 그런 곳이었다. 그런 위치 탓에 신당동은 오랫동안 낡은 마을로 남아있었다. 지금은 많이 재개발되어 사라졌지만, 지금도 신당1동과 신당5동엔 옛날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12월에 세 차례에 걸쳐 신당동을 찾았다. 출발지는 동대문운동장역 3번 출구 건너편 광희문이다."골목이 워낙 넓어서..." ▲ 광희문. 동대문운동장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인다. ⓒ 김대홍 광희문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싼 성곽 8문 중 하나가 광희문이다. 동서남북에 큰 문이 하나씩 있고, 그 사이에 작은 문이 하나씩 있었던 셈이다. 광희문은 숭례문과 흥인지문 사이에 있었던 동남쪽 문이다. 광희문엔 서울성곽이 복원돼 있다. 태조 5년인 1396년 서울 성곽 길이는 약 5만9500척으로 17km 정도였다. 1975년 복원 당시 측정한 길이는 18km 정도로 조선 초기 당시와 큰 차이는 없었다. 광희문에 붙어 있는 동네가 신당1동이다. 신당1동에 옛 골목길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광희문길 골목이 무척 아기자기하고 변화가 심한 편이다. 골목이 좁아 자전거를 끌고 다니다 반대편에서 사람이 나오면 후진하거나 한 쪽으로 바짝 붙어야 했다. 한 아주머니를 보고 근처 벽에 바짝 붙어 있었더니, 아주머니께선 "골목이 워낙 넓어서…"라며 웃으셨다. 대추나무길 골목도 무척 좁다.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만한 폭이다. 단 광희문길이 미로처럼 복잡하다면 대추나무길은 일자형이다. 골목이 보여주는 아기자기함은 떨어진다. 이 곳 골목에서 사진을 찍을 때 몇 번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마다 나온 첫마디는 "재개발 때문에 찍느냐"였다. 혹시나 사진을 어디 이용하지 않을까 의심하는 눈빛이 묻어났다. 이런 질문을 재개발 지역을 찍으면서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 골목에선 빨랫줄을 많이 볼 수 있다. 도시에서 점점 사라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빨랫줄이다. ⓒ 조정래 신당동 이런 재개발 동네를 다니면 부서진 문을 테이프 등으로 대충 막아놓은 곳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곧 떠나갈 곳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붙여놓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 편이 편치 않다. 신당1동 골목길에도 계단이 많다. 자동차가 다닐 만한 길에서 민가가 있는 주택가로 들어갈 때는 꼭 계단이 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계단이 꼭 자동차를 막는 근위병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 계단에 대해서는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의 저자 황인숙이 훌륭하게 표현해놓았다."계단은 아이들에게 즐거운 구조물이다. 계단으로는 자동차는 물론이고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다닐 수 없다. 계단 길은 보행자를 위해 각별히 공들여 만든 길이다. 계단은 배려이며 초대이며 유혹이다. 한없이 뻗어 있는 계단을 보면 칸칸이 층층이 그 계단을 딛고 올라오시라는 신호를 받는 느낌이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우에게는 계단이 높고 힘겨운 턱일 따름이다. 의자처럼 걸터앉기 딱 좋은 그 계단 턱에서 아이들은 소꿉장난을 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어떤 이들은 숨을 고른다."한 때 대장간 160여 곳 성업...지금은 10여 곳 정도만 명맥 유지 ▲ 신당동에 있는 한 대장간. 대장간 안에 가마도 있고, 모루도 있다. ⓒ 김대홍 신당동 신당1동 골목길을 구경한 뒤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도로가에 있는 대장간 거리다. 광희문에서 신당역으로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대장간 세 곳이 있고, 길 건너편 한양공고와 성동여자실업고 사이에 대장간 여섯 곳이 있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 83화 '대장간의 하루'의 배경이 바로 이 곳이다.그 곳 대장간 주인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이 곳 대장간은 한 때 160여 곳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그 때는 화덕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쇠를 모루 위에 놓고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로 요란했을 것이다. 이 곳 대장간은 오전 7시쯤이면 이미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은 농사꾼들을 닮았다. 저녁 해가 진 뒤까지 일하고 일 ........... 생략.
경쾌한 쇠망치 소리...서울에 있는 대장간 마을
했다. 어쨌거나 지금껏 세간에 오르내리는 여러... 있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 83화 '대장간의 하루'의... 출구를 지난 뒤, 성동고등학교에서 무학봉 쪽으로 다시... 표정에 실망감이 스친다. 우리는 건너편 중앙시장으로 발길을...
▲ 신당1동과 신당5동에 전통 골목길이 남아 있다. 사진은 신당5동. ⓒ 조정래 신당동 서울시 중구에 있는 신당동은 여러 가지로 유명한 게 많다. 가수 DJ DOC가 부른 노래 '허리케인 박'의 무대가 신당동이고, '왕십리 곱창골목'으로 유명한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이 이곳에 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10여 개나 되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대장간 거리 또한 신당동에 있다.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연합이 91년 생활용품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 만든 알뜰가게가 처음 문을 연 곳 또한 신당동이었다. 재활용 가게로 유명한 '아름다운 가게' 1호점(안국점, 2002년 개장)이 생기기 11년 전이었다. 신당동은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종필 김형욱 등 영관장교들과 함께 쿠데타 계획을 짠 곳이 신당동 자택이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아버지 사후 청와대에서 나와 머무른 곳 또한 이 동네다. 최근 정치 재개를 한 전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자택이 있는 곳 또한 신당동이다.이번 대선에 출마한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97년 서울 구기동 주택을 팔고 신당동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으니 신당동과 정치인과의 인연은 적지 않은 셈이다. ▲ 신당1동 주택가. 멀리 동대문 상가가 보인다. ⓒ 김대홍 신당동 정치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락의 대부' 신중현이 1938년 이 곳에서 태어났고, 70년대 전 국민을 흥분케 했던 프로레슬러 김일이 결혼한 뒤 이 곳에서 살았다. 또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22살 때 '경일상회'라는 이름으로 첫 사업(쌀 도산매업)을 시작하기도 했다.어쨌거나 지금껏 세간에 오르내리는 여러 인물들이 이 곳에 둥지를 틀고 있거나 틀었었다. 신당동은 서울 사대문 성벽에 붙어 있는 바깥 마을이었다. 사대문 동쪽 문이 흥인지문이었고, 그 아래 동남쪽에 광희문이 있다. 광희문은 도성에서 사람이 죽을 때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었기 때문에 속칭 시구문(屍口門) 혹은 수구문(水口門)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광희문 바로 바깥쪽 마을이 신당동이다.10여 년 전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선배네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산 쪽으로 한참을 걸어 올라갔더니 두 사람이 간신히 몸을 눕힐 만한 조그만 방에 선배가 살고 있었다. 그 동네가 바로 신당동이었다. 당시 가진 것은 맨몸밖에 없는 20대 청년이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절절함을 그 방에서 느꼈던 기억이 난다.사대문 밖에 붙어 있는 마을, 사대문이 서울이던 시절, 서울에 가장 가까웠던 변두리. 신당동은 그런 곳이었다. 그런 위치 탓에 신당동은 오랫동안 낡은 마을로 남아있었다. 지금은 많이 재개발되어 사라졌지만, 지금도 신당1동과 신당5동엔 옛날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12월에 세 차례에 걸쳐 신당동을 찾았다. 출발지는 동대문운동장역 3번 출구 건너편 광희문이다."골목이 워낙 넓어서..." ▲ 광희문. 동대문운동장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인다. ⓒ 김대홍 광희문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싼 성곽 8문 중 하나가 광희문이다. 동서남북에 큰 문이 하나씩 있고, 그 사이에 작은 문이 하나씩 있었던 셈이다. 광희문은 숭례문과 흥인지문 사이에 있었던 동남쪽 문이다. 광희문엔 서울성곽이 복원돼 있다. 태조 5년인 1396년 서울 성곽 길이는 약 5만9500척으로 17km 정도였다. 1975년 복원 당시 측정한 길이는 18km 정도로 조선 초기 당시와 큰 차이는 없었다. 광희문에 붙어 있는 동네가 신당1동이다. 신당1동에 옛 골목길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광희문길 골목이 무척 아기자기하고 변화가 심한 편이다. 골목이 좁아 자전거를 끌고 다니다 반대편에서 사람이 나오면 후진하거나 한 쪽으로 바짝 붙어야 했다. 한 아주머니를 보고 근처 벽에 바짝 붙어 있었더니, 아주머니께선 "골목이 워낙 넓어서…"라며 웃으셨다. 대추나무길 골목도 무척 좁다.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만한 폭이다. 단 광희문길이 미로처럼 복잡하다면 대추나무길은 일자형이다. 골목이 보여주는 아기자기함은 떨어진다. 이 곳 골목에서 사진을 찍을 때 몇 번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마다 나온 첫마디는 "재개발 때문에 찍느냐"였다. 혹시나 사진을 어디 이용하지 않을까 의심하는 눈빛이 묻어났다. 이런 질문을 재개발 지역을 찍으면서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 골목에선 빨랫줄을 많이 볼 수 있다. 도시에서 점점 사라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빨랫줄이다. ⓒ 조정래 신당동 이런 재개발 동네를 다니면 부서진 문을 테이프 등으로 대충 막아놓은 곳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곧 떠나갈 곳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붙여놓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 편이 편치 않다. 신당1동 골목길에도 계단이 많다. 자동차가 다닐 만한 길에서 민가가 있는 주택가로 들어갈 때는 꼭 계단이 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계단이 꼭 자동차를 막는 근위병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 계단에 대해서는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의 저자 황인숙이 훌륭하게 표현해놓았다."계단은 아이들에게 즐거운 구조물이다. 계단으로는 자동차는 물론이고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다닐 수 없다. 계단 길은 보행자를 위해 각별히 공들여 만든 길이다. 계단은 배려이며 초대이며 유혹이다. 한없이 뻗어 있는 계단을 보면 칸칸이 층층이 그 계단을 딛고 올라오시라는 신호를 받는 느낌이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우에게는 계단이 높고 힘겨운 턱일 따름이다. 의자처럼 걸터앉기 딱 좋은 그 계단 턱에서 아이들은 소꿉장난을 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어떤 이들은 숨을 고른다."한 때 대장간 160여 곳 성업...지금은 10여 곳 정도만 명맥 유지 ▲ 신당동에 있는 한 대장간. 대장간 안에 가마도 있고, 모루도 있다. ⓒ 김대홍 신당동 신당1동 골목길을 구경한 뒤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도로가에 있는 대장간 거리다. 광희문에서 신당역으로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대장간 세 곳이 있고, 길 건너편 한양공고와 성동여자실업고 사이에 대장간 여섯 곳이 있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 83화 '대장간의 하루'의 배경이 바로 이 곳이다.그 곳 대장간 주인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이 곳 대장간은 한 때 160여 곳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그 때는 화덕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쇠를 모루 위에 놓고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로 요란했을 것이다. 이 곳 대장간은 오전 7시쯤이면 이미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은 농사꾼들을 닮았다. 저녁 해가 진 뒤까지 일하고 일 ........... 생략.
경쾌한 쇠망치 소리...서울에 있는 대장간 마을
했다. 어쨌거나 지금껏 세간에 오르내리는 여러... 있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 83화 '대장간의 하루'의... 출구를 지난 뒤, 성동고등학교에서 무학봉 쪽으로 다시... 표정에 실망감이 스친다. 우리는 건너편 중앙시장으로 발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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