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中國을 너무 모른다] 정치

4년 동안 정상회담 8차례 연 동반자 관계

동북공정 강행·탈북자 문제 등은 암초로

 

한국과 중국의 정치적 교류가 늘어나고 있다. 갈수록 잦아지는 한·중 정상회담이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2003 7노무현 대통령이 방중 때 양국 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설정했으며, 올해까지 총 8번의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지난 9 7노무현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양국이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또한 이 자리에서 두 정상은 앞으로 양국 쌍방 투자자들의 송금 지연기간을 기존의 6개월에서 2개월로 단축하고, 투자자 분쟁 발생 시 국제중재에 제소하기 전에 갖는 협의 기간을 4개월로 단축키로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한·중 투자보장협정 개정에 서명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외에 원자바오 총리, 차기 지도자 후보인 시진핑 상무위원 등 중국 고위지도자들의 한국 방문이 잇따르고 있다. 물론 우리 측에서도 중국으로 향하는 고위급 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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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 정상회담에 임하는 양국정상. / 필사적으로 안전지대 진입을 시도하는 중국 내 탈북자들.


장팅옌 전 주한 중국대사는한·중 관계가 15년 만에 이렇게 발전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양국 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대승적이고 전면적인 협력관계의 큰 줄기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중국은 한국과 평등한 차원에서윈윈을 위해 노력할 뿐이지 야심이 없다·중 간에는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더욱 많은 전략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지난 9 28일 중국의 변화를 학술적으로 조명한중국연구총서를 국내 최초로 완간하는 등 중국에 대한 이해와 올바른 한·중 관계 정립에 대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한·중 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이웃 나라끼리 마찰은 늘 있게 마련이지만 한·중 양국의 분쟁은 한반도가 분단상태이며 중국이 북한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라는 점에서 불평등한 모습이 자주 드러나고 있다.

 

동북공정은 한·중 양국의 미래에 암초를 드리우고 있다. 2006년 주한중국대사가 동북공정에 대해국가 차원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2004년 중국이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를 삭제하고 관영매체를 통해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왜곡하는 등 2002년부터 계속된 중국의 동북공정 은 여전히 양국 간에 껄끄러운 문제로 남아있다.

 

역사적인 측면 이외에도 2000년 중국 마늘에 대한 우리 정부의 관세조치에 대해 중국이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에 대해 잠정적으로 수입을 중단했고, 지난 10 9일 중국 공안들이 베이징 한국국제학교에서 탈북자들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우리 영사를 폭행했으며, 2002년에는 중국 공안이 베이징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하여 탈북자를 끌어내고 외교관을 폭행하는 등 양국의 정치·경제적 마찰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10 20일에 열린 주중 한국대사관에 대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임종석 의원은·중 수교 15주년을 맞아 한·중 관계는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됐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무력감을 느낀다면서바로잡을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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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中國을 너무 모른다] 사회

젓갈··김치 등 전통 먹거리까지 점령

옌볜 아줌마 없이는 식당운영도 못할 판

갈비2인분 말하셨습니까?~” 지난 10 24일 서울 안암동의 한 갈빗집. 겉보기에는 마냥 평범한 식당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짙은 옌볜 사투리를 듣고는 아줌마를 다시 쳐다보게 된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옌볜이라고 했다. 이런 풍경은 한·중 수교 후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8 월 말까지 한국에 취업 중인 중국동포(조선족) 수는 9만4305명. 이 중 음식업계 종사자가 29663명으로 전체의 31.4%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어느 식당에서든 조선족 동포 아주머니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조선족 동포를 고용하는 이유는 한국인 종업원을 구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 이 틈을 노려 전문 브로커가 생기고 조선족 동포를 전문으로 소개하는 직업 소개소가 생겼으며 이제는 서울시내 절반 이상의 식당이 1명 이상의 조선족 동포를 고용하고 있을 만큼 보편화됐다. 바꿔 말하면 조선족 동포  없이는 식당 운영이 힘들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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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대표식품인 김치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산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한국과 중국이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수교한 지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적 교류의 증가이다. 수교 첫해 13만명이던 한국과 중국 간 왕래자 수는 2006 482만명으로 37배나 증가해 이 인원을 수송하기 위해 현재 매주 804 편의 항공편이 한국의 6개 도시와 중국의 30여개 도시를 오가고 있다. 하루 평균 11000명의 한국인이 중국을 방문한다. 체류자 수도 급증했다. 최근에 한국은 외국인 100만명 시대를 열었지만 그 중 중국 국적이 44만명으로 무려 절반에 가깝다. 이들 중에는 한국에서 유학 중이거나 친지를 방문 중인 사람도 있고 내국인의 일손이 부족한 곳에서 묵묵히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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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국제 제1여객터미널 농산물 검역소의 중국산 고추 검역 장면. (photo 조선일보 DB)


중국어에 대한 수요도 급격히 증가해 인적 교류뿐 아니라 교육 교류도 활발하다. 조선족 동포 최려(24)씨는 어렸을 때부터 베이징에서 생활해 한국 문화를 거의 접하지 못했다. “조선족이지만 옌볜에서 생활하지 않아서 한국어는 거의 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고 한국어도 본격적으로 배울 겸 한국 대학으로 가라고 권하셨습니다.” 고민 끝에 최씨는 여행 산업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한양대 관광학부 05학번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 중국에서 유학 온 조선족 동포는 중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유창하게 구사하기 때문에 중국 관광객이 급증한 요즘, 면세점 등 관광 관련 업체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인기다. 이렇게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국인은 전체 외국인 유학생 32000여명 중 60% 2만명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한양대의 경우 학위과정 중인 900여명의 전체 외국인 학생 중 중국인이 523명으로 압도적이다.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하며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한국 기업에 취직한다.

 
반대로 몇 년 사이에 중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도 부쩍 늘었다. 지난해 말 중국으로 유학 간 한국 학생은 5만7000여명으로 중국 전체 유학생인 16만명의 36%에 이르며 1만8000여명으로 2위인 일본의 3배가 넘는다. 통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초··고 중국 조기 유학생 수는 2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수를 합하면 8만명에 가까운 학생이 중국에 유학 중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에서 조리학과를 졸업한 임경빈(27)씨는 2004 8월 중국으로 건너가 전통 중국요리를 배우고 지난 1월 귀국했다. “유학원을 통해 요리로 유명한 중국 장쑤성의 요리학원을 소개 받아서 2년 반 정도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 부쩍 많아진 것 같습니다. 시골인데도 한국 사람이 드문드문 보이더라고요.” 임씨는 귀국해서 현재 딤섬 전문점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중국산 농수산물은 한·중 수교 후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장 실감나게 하는 분야의 하나다. 15년 동안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 중 하나가 식품 안전성을 지적하는중국산 농수산물일 것이다. 그러나 1992 1인분에 3000원이던 된장찌개가 15년이 지난 지금 5000원을 유지하면서 서민의 뱃속을 달래줄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말만 들어도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는 중국산 덕분이다. 찌개에 들어가는 멸치와 해물은 물론 쌀, 대파, 양파, 마늘, 당근 등은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중국산 당근의 경우 가격과 품질을 인정 받아 가락시장 진출 2년 만에 시장의 절반을 장악했다. 이렇게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중국산 공세는 농수산물을 넘어 가공식품으로 옮아가고 있다. 중국산 수입식품 1위는 물론 김치지만 젓갈이나 장류 등의 수입량도 상당한 것을 보면 전통 영역이라고 여기던 우리의 식탁 구석구석까지 중국산이 얼마나 빠르게 침투했는지 알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수입식품팀의 백종민 사무관은 중국산 수입식품 중 통조림이나 과자 등을 포함한 가공식품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식장이나 행사장 등과 같이 갈비탕이나 설렁탕 전문점이 아닌 곳에서 제공되는 음식의 대부분은 중국산 통조림이며, 도토리묵이나 떡볶이 떡 등도 거의 중국산이다. 중국산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동국대 식품공학과 신한승 교수는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산 농수산물과 가공식품의 수입은 세계적 추세라며그러나 우리가 보다 값싸고 질 좋은 농산물을 먹기 위해서는 미국과 같이 중국산 농산물에 대한 전용 안전 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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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인적·물적 교류가 급증하면서 한국은 서해안 시대가 활짝 열렸다. ·중 수교 이전 중심축이던 경부 벨트의 비중이 낮아지고 서해안 벨트가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인천이 좋은 사례다. 요즘 인천 세관에는 하루 3000여개의 컨테이너가 들어오는데 그 중 90%가 중국에서 온다고 한다. 중국으로 가는 관문 격인 인천은 급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인천 인구는 1995년부터 2007 6월 말까지 28만명 정도 증가해 총 2686022명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동안 25만명이 감소한 부산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며 제2의 도시 자리를 넘보고 있다.

 

서해안을 통한 교역량이 급증하면서 목포까지 이어지는 서해안 벨트가 새로운 산업단지로 자리잡았고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장 인접한 충남 당진과 전북 군산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속속 자리를 옮기고 있다. 동아대 동북아 국제대학원의 최순 교수는과거에는 경부축이 중심이던 것이 서쪽으로 옮겨 가면서 지방분권화되고 있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중국에 대한 의존성이 너무 커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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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中國을 너무 모른다] 문화

            인기 드라마 베스트10 중 절반이 한국 것

고자세·일방적 교류에 수입제한 등 제동

 

“외교관 수십 명이 몇 년에 걸쳐 일군 성과보다 드라마 한 편의 역할이 더 컸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중국 내 인기에 대한 평가다. 1997년 중국국영방송(CCTV)은 한국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중국 전역에 방영했다. ‘사랑이 뭐길래’는 당시까지 방영됐던 외국 드라마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중국 내 한류 열풍의 기폭제가 됐다.

 

한류(韓流·Korean wave)는 한국 대중문화를 좋아하고 이를 배우려는 문화현상을 뜻한다. 이 단어는 1999 11월 중국의 일간지인 ‘베이징칭녠바오(北京靑年報)’가 처음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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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에서 한류 열풍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드라마다. ‘사랑이 뭐길래’에 이어 ‘별은 내 가슴에’ ‘가을동화’ ‘대장금’ 등이 잇따라 히트를 했다. 2005년 중국 시청자들은 그 해 최고의 드라마 1위로 ‘대장금’, 2위에는 ‘풀 하우스’를 꼽았다. 상위 10편의 작품 중 5편은 한국 드라마가 차지했다.

 

대중가요도 한류 붐을 이끌었다. 한국 가요는 1997년부터 중국에서 한국 음악을 소개해온 ‘한청인위에팅(漢城音樂廳·서울음악실)’이라는 방송을 통해 알려졌다. 1998년에는 인기 그룹 HOT가 음반을 발매했고 2000년부턴 국내 가수들의 중국 현지 공연이 줄을 이었다. 한국가요 팬클럽이 생겨났고 레코드 가게엔 한국 노래 음반이 진열됐다.

 

영화도 빼놓을 수 없다. 2002년 중국에 소개된 ‘엽기적인 그녀’ 20~3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2004 6월 전국 30여개 도시에서 개봉되기도 했다. 지난 3월 중국에서 개봉한 ‘괴물’은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이 밖에도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 퍼포먼스 공연 ‘난타’, 온라인게임 ‘카트라이더’ 등도 한류에 한몫을 했다.

 

이와 반대로 한국에서의 중국 열풍, 중국발 한류(漢流) 또한 만만치 않은 흐름을 보인다. 인터넷서점 인터파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소설 베스트셀러 30종의 판매량이 작년에 비해 73% 늘었다. 중국 소설 전체는 작년에 비해 판매량이 547% 늘었다. 중국 기예단의 국내 초청 공연이나 중국 현대 작가의 국내 전시회도 붐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문화 교류가 쌍방이 아니라 일방적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상대 문화를 이해하지 않는 ‘밀어내기식’ 진출로 인해 없던 장벽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가 강세를 보이자 중국은 작년 한국 영상물에 대한 수입제한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최근엔 ‘한류에 대항하자’는 ‘항()한류’라는 흐름까지 생겨나고 있다. 대만의 한 방송사 관계자는 “한국 측의 고자세 때문에 한국 드라마 수출이 줄어들고 있다”며 “대만의 방송사들은 자체적으로 수준 높은 드라마를 제작해 중국에 수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장수현 광운대 교수는 “중국의 문화산업도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문화상품이 우려내기나 반복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언젠가는 문화 역전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며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는 노력 속에서 두 나라 국민이 같이 즐길 수 있는 문화상품을 함께 만들어내야 한류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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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中國을 너무 모른다] 경제

세계 4위 경제 대국, 한국기업 逆 사냥 나서

세제 혜택 축소 등 우리 투자 여건은 악화

우리가 부품 수출하면 중국이 완제품 만들어

세계 시장에 진출 기업 16000개…

변화 못읽고 직원 해고했다 불이익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세계 4, 한국은 소득 2만달러.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15년 만에 두 나라가 받아 든 성적표다. 두 나라의 경제 교류는 단순 무역에서 그치지 않았다.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고 한국은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는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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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시내의 한 백화점에 전시된 한국 브랜드의 LCD TV를 소비자들이 살펴보고 있다.

1992년 중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380달러로 후진국이었다. 인구가 많기 때문에 경제의 덩치는 커서 당시 세계 7~8위권의 경제였다. 중국은 1992 1월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자”고 다시 강조하기 전까지 시장경제로 갈지조차 헷갈리고 있었다. 1992년 개발도상국의 대표주자였던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740달러로 세계 40위 수준이었다.

 

작년 중국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중국의 1인당 소득은 2001달러로 15년 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은 그 동안 외환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올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게 됐다.

 

두 나라를 동반 성장하게 이어준 끈은 무역과 투자였다. 15년 전 두 나라의 수출과 수입을 합한 교역액은 51억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작년 1344억달러로 26배 증가했다. 특히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급증했다. 중국이 ‘세계의 조립공장’으로 변모하면서 부품과 반제품을 공급하는 한국의 수출이 늘어난 것이다.

 

한국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 11.8%에서 작년 21.3%로 높아졌다. 1992년 우리나라의 수출 대상국 6위였던 중국은 2003년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이 됐다. 2004년엔 최대 교역대상국이 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 중 82%가 중간재이고, 55.8%가 가공무역과 연결돼 있다. 한국이 중국에 부품과 반제품을 공급하면 중국은 그것을 조립해서 세계 시장에 내다팔고 있다는 것이다. 무역 대금은 거꾸로 흐른다. 중국이 미국 등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내면 그 돈은 다시 한국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내면서 한국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다.

 

중국의 성장은 한국이 1997년 말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외환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지 않았던 중국은 아시아를 휩쓴 외환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위안화 가치를 지켜주면서 버팀목이 돼 줬다. 마이너스 성장으로 내수가 가라앉았을 때 전자·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서 판로와 투자처를 찾으면서 회복의 길로 빠르게 나설 수 있었다.

 

중국이 세계적 제품 조립기지가 된 데는 한국의 직접투자가 큰 몫을 했다. 1992년 한국의 대중 직접투자는 14100만달러(170)에 불과했지만 작년엔 33900만달러(2300) 23배 증가했다. 한국은 2002년 미국을 제치고 대중 직접투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대중 직접투자는 한국의 부품 수출 증가로 이어졌다.

 

중국에 진출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95%는 중소기업이다. 이 때문에 국내 중소기업 기반이 사라져 산업이 공동화된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인건비 상승으로 경쟁력을 상실해가던 국내 중소기업들이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존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된 측면도 있다. 수출입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수교 이후 한국 기업이 중국에 세운 법인은 16000개에 달한다.

 

대기업의 진출도 활발하다. 삼성은 1995년 지주회사 격인 중국삼성을 세운 뒤에 그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삼성전자·삼성SDI·삼성화재·삼성물산 등 20여개 계열사가 진출해 있다. 현대차는 2002년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차를 세워 베이징에서 ‘쏘나타’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LG LG전자를 중심으로 LG화학, LG필립스LCD 등이 진출해 있다.
중국 기업의 한국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중국 최대의 가전업체인 하이얼은 2004년 하이얼코리아라는 한국 법인을 설립하고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와인냉장고는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이다.

 

중국 기업의 한국 기업 인수도 이뤄지고 있다. 국의 BOE그룹이 2003년 하이닉스의 LCD 분야 자회사인 하이디스를 4000억원에 인수했고, 상하이자동차는 2004년 쌍용자동차를 5900억원에 사들였다. 그러나 중국 기업이 한국 기업을 인수하면서 기술만 확보하려는 의도가 강했기 때문에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이디스는 결국 대주주와의 갈등 등으로 올해 5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중국 쪽 지분을 모두 소각했다. 은종학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중국 측의 의도는 모른 채 단순한 경제 교류에만 목적을 둔다면 피해를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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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최근 중국 당국이 세제혜택을 축소하고 고용보호를 강화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사정 변화를 읽지 못하고 ‘묻지마 투자’에 나선 기업들은 울상이다. 컨테이너 부품을 생산하는 칭다오 소재 A사의 경우엔 직원 복지 비용이 연 15% 정도 증가하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수출입은행 조사원을 만나 “기업이 섣불리 해고를 할 경우엔 법원에 제소해서 경영 활동에 위축을 가져오고 무마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며 “심하면 파견된 한국인 직원의 신변에도 위협을 느낄 정도”라고 전했다. 김주영 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한국 기업들은 월 2000위안( 30만원)만 주면 중국 사정에 밝은 중국인 고문 변호사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며 “현지 사정을 상세히 알고 기업 활동을 해야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중 경제 관계도 앞으로는 갈등의 요소가 많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사무소장은 “경제대국이 된 중국은 무역 분쟁이 발생하면 ‘우리 길을 가겠다’는 식의 자기 주장을 많이 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한국으로서도 선진국 입장에서 지적재산권·환경 등의 문제에 대해 중국에 ‘할 말은 한다’는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무역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KOTRA는 수교 20년이 되는 2012년 두 나라의 무역액이 200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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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中國을 너무 모른다] 중국현지에서 보는 시각(1)

  허가 받고 공장 지었는데 市에서 철거

부동산 투자 낭패 사례만 한 달에 수십 건

 
한국사람을 가장 많이 아는 중국사람은 누구일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아니다. 당위서기(黨委書記). 한국인은 어느 지방을 방문해도 그 지역 당위서기와 ‘친구’가 안 되는 사람이 없다. 당위서기는 본인이 움직이기 정 어렵다면 적어도 부()서기 정도를 공항에 마중 보내든지, 비서를 보내서라도 영접한다. 당위서기라는 직책은 모든 한국인의 영원한 친구(펑요·朋友).

 

요즘은 군()부대의 높은 사람, 공안(公安), 심지어는 흑사회(黑社會·중국폭력조직)와의 접촉도 잦다. 중국 유학생이 증가하고 로펌과 개인 변호사의 진출도 늘었으니 교장과 중·고급 법원장(한국의 지방·고등법원장), 검찰, 거기다가 국가안전부(한국의 국정원)까지 펑요(朋友)다. 다시 말해 13억 중국인 거의 전부가 대한민국, 혹은 한국인과 친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지난해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은 440만명으로 중국 방문 외국인 중 1위를 차지했다. 또 대()중국 투자는 2003년 이후 225억달러에 이른다. 대한민국 경제가 중국에 올인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이 중국을 짝사랑하는 정도가 이렇다. 그런데 그에 걸맞게 상대를 잘 알고 있을까. 그건 아니다. 중국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사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인이 가장 관심 있는 부동산을 보자. 현지에 사는 한국인, 조선족 동포, 혹은 신분마저 불확실한 중국인의 말만 듣고 투자했다가 낭패한 사례가 매달 수십 건에 이른다. 가장 흔한 것이 건물·공장·아파트의 소유자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아무 권리가 없는 제3자와 계약하는 경우다. 중국의 제도를 몰라 손해를 보는 사례도 숱하다. 한국의 유명 광고회사가 현(縣·한국의 군에 해당) 정부의 말을 듣고 취득한 부지에 본사 사옥 겸 임대용 건물을 지은 적이 있다. 그런데 준공한 지 얼마 뒤에 시(·현의 상위기관) 정부로부터 통지서가 왔다. 불법이니 철거하라는 내용이었다. 현 정부의 허가는 받았지만, 최종적 인허가권을 가진 시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탓이다. 결국 아무 보상금도 못 받고 건물을 철거했다.

 
작년 7월에는외국인은 1년 이상 거주해야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다는 법안이 발표되었다. 이를 피해 중국인 이름으로 아파트를 명의신탁했다가 결국 소유권 분쟁 소송으로 이어진 경우가 베이징·상하이·칭다오·다롄 등 중국 전역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작년 5월 칭다오(靑島) 자오저우(膠州) 지역에 투자한 한국 공예품 업체의 박모 사장은 전기요금을 미리 내라는 관청의 요구에 항의하다가 구타 당해 입원했다. 이 불상사의 배경은 이렇다. 근래 중국은 노동력 부족과 인건비 상승으로 기업의 부담이 커졌다. 게다가 오염 규제 강화로 외국 기업에 주던 특혜도 크게 줄었다. 결국 많은 한국 기업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융자금을 갚지 않고 야반도주하는 사례가 빈발했다. 이래서 한국 기업은 믿기 어려우니 공과금을 먼저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쑤저우(蘇州)의 한 공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국인 사장이 잘못을 저지른 중국 직원을 동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게 했다. 모욕 당한 직원은 회사를 상대로 고소했고, 회사는 공개사과 및 배상과 더불어 노동부에요주의 회사로 낙인 찍혔다. 한국에서 용납되지 않는 행동도 중국에선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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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中國을 너무 모른다] 중국현지에서 보는 시각(2)

한국인중국인은 촌스럽고 센스없다

중국인한국인은 형편없는 변방 사람

 
한국인은 우선 중국인을 잘 모른다. 문화적으로는 유교도 잘 이해하고, 삼국지도 많이들 읽었지만 중국인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저중국인은 고리타분하고, 촌스럽고, 센스 없고, 배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인은 그렇지 않다. ‘대지약우(大智若愚)’를 추구하는 사람이 많다.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은 바보처럼 보인다는 경지다. 중국인 가운데는 머리 좋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한국인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사람은 차림을 허술하게 하기를 즐긴다. 운동복을 입고 중요한 자리에 가는 사람도 많다. 한국사람이 결사적으로 양복에 넥타이를 매는 데 비하면 아주 대조적이다. 중국인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또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는다.

 

한국인은 성격이 급하다. 자기 주장을 너무 내세운다.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긴다. 언어문제가 아니다. 사업 파트너에게 자기 이야기만 강조하기 일쑤다. 중국인은 그런 경우를 당하면 침묵을 택한다. 그러면 또 한국인은나를 무시한다고 한다. 중국인은 이때 속으로가오리 방즈라고 욕한다. ‘변방에 살던 형편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어쩌다가 지금은 잘살게 됐지만, 곧 우리에게 따라 잡힌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한국의 한 장관이 베이징에 왔다. 환송 만찬 때 중국 쪽에서는 국장급이 나갔다. 그럴 정도로 요즘 중국사람들의 자부심은 높아졌다.

 
한국인은 매일 바쁘다고 말한다. 그런데 중국인은 늘 여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인도 정말로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인이 늘 바쁜 이유는 일의 선후와 경중을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고 중국인은 꼬집곤 한다. 중국인은선후와 경중을 늘 따진다. 꼭 해야 할 일은 목숨을 걸고라도 한다. 그렇지만 여유를 보이면서 한다.


한국인은 생각하는 것이 표정에 금방 나타난다. 자기 표정을 컨트롤할 줄 모른다. 중국사람은 그런 사람들과는 큰 비즈니스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유 있고 진중해 보이는 사람을 상대하고 싶어한다. 멋대로 화내고, 막무가내로 뭘 해내라고 다그치고, 먼저 일을 저지르고 보는 그런 사람을 중국사람은 신뢰하지 않는다.
비즈니스 토크 때 보아도 대체로 그렇다. 한국인은 먼저 떠들기 시작한다. 중국인은 확신이 없을 때는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다.


중국인은 실리적이다.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1000위안이라도 더 주면 직장을 옮긴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그렇게 잘해줬는데 의리도 없이…”라는 식의 말은 통하지 않는다. 붙잡아 두려면 돈을 더 줘야 한다. 인재를 확보하려면 남보다 더 투자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의 법규부터 알고 나서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무역법이나 노동법쯤은 당연히 읽어 보고 와야 한다. 중국인의 비즈니스 스타일도 잘 알고 왔으면 한다. 담판수법에는 어떤 것이 있고, 어떤 수단으로 상대방을 지치게 하는지 알아야 한다. 물론 비즈니스 내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도 대기업에는 현지 정보를 수집·파악하는 직원이 있지만,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현지 정보를 전혀 알아보지도 않은 채 용감무쌍하게 공항에 내린다. 한국인의 급한 성격이 그동안 발전의 밑거름이 됐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 비즈니스에서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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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우리는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중국에 관한 상식은 왜 필요한가?”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의 사례에서 저절로 얻어질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중국 장쑤성(江蘇省) 난징(南京)에 한국의 모 보일러제조업체 회장이 찾아왔다.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가정용 보일러를 중국에서도 팔기 위해서였다. 통역을 대동하고 상하이(上海)를 거쳐 난징까지 오는 동안 회장님은 공항세관, 경찰, 시청 직원 등에게 최신형 보일러를 선물했다. 이런 노력 끝에 난징시 간부들과 만날 수 있었다. 만찬 자리에서 중국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 창장(長江·양쯔강) 이남에서는 가정에 난방설비를 할 수 없어요.” 회장님은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중국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다. 만약 한국이 중국과 접촉 없이 살 수 있다면 중국에 관한 상식도 필요없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예를 들어, 지난해 4800만 한국인 중 440만명이 중국을 방문했다. 국민 9명 중 한 명꼴로 중국에 갔다왔다는 얘기다. 중국에서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은 54000명에 달한다. 한국의 무역흑자 대부분은 중국에서 나오고, 한국의 해외 투자 중 중국 투자비중이 가장 높다. 가족이나 친척 중 한 명 이상은 중국과 관련된 비즈니스로 돈을 번다. 중국 여성과 결혼하는 한국인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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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미·일 3국 방송사가 공동으로 실시한 ‘차이나 프리(China Free·중국 제품 없이 살아가기)’ 실험에서 하루라도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먹고 살고, 돈 벌고, 여행하는’ 모든 일에서 중국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싫다고 외면할 단계는 지났다. 그렇다면 좋든 싫든 중국을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기왕 중국과 어깨를 맞대고 살려면, 상대를 잘 이해하고 파악해서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윈윈(win-win) 관계로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지피지기(知彼知己)’ 전략으로 가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여기서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은 중국을 얼마나 아는가?

 

“혹시 중국 한두 번 갔다온 것으로 친구들 앞에서 전문가로 행세한 적은 없는가?”

 

한·중 수교 15년이 지나면서 국내에도 중국전문가가 많아졌다. 정부와 기업의 중국 주재원과 중국 유학생이 늘어난 덕분이다. 인터넷에는 여행상품·경제 등에 관한 정보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일반인의 경우 중국 이해 수준은 아직도 낮은 편이다.

천편일률적 관광코스에 똑같은 음식
가짜와 진짜 구분 못하면서 싹쓸이 쇼핑

하루에도 수천 명씩 떠나는 여행 행태를 보자.

신 문 광고란을 장식하는 여행사의 중국 여행코스는 천편일률적이다. 베이징 주변, 장자지에(張家界), 주자이거우(九寨溝), 하이난다오(海南島), 칭다오(靑島), 웨이하이(威海) 골프여행 등 똑같은 코스로 여행사 이름만 달리해 일 년에도 수십 번씩 관광객을 내보낸다. 중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인처럼 상대하기 편한 고객은 없다. 한국인은 똑같은 코스를 돌며, 똑같은 경치를 구경하고, 디지털카메라로 똑같은 풍경을 찍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가이드가 안내하는 저질상품 가게에서 똑같은 기념품을 사면서 똑같이 바가지를 쓴다. 연령별로 40대 이상의 한국 관광객은 여행사가 안내하지 않는 코스로 개별여행하기를 겁낸다. 언어와 비용문제도 있지만 도전의식도 부족하다. 유럽이나 일본 여행객 중에는 중국의 문화·예술·종교 등 자신만의 관심분야를 가지고 개별적으로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국인의 ‘싹쓸이 쇼핑문화’는 여전하다. 한국 관광객 중에 중국의 가짜 술과 저질 차()를 가려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도 한 사람이 물건을 사면 다른 사람까지 우르르 몰려가 싹쓸이 쇼핑을 하는 경향이 있다. 현지 가이드가 안내하는 차 판매점은 대부분 농약을 살포한 저질 차를 판매하는데도 많은 양을 사온다. 그렇게 사온 차는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대부분 찬장 귀퉁이에 몇 년간 방치되다가 어느 날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중국에서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은 중국 문화의 일부분을 접하는 일이다. 중국 현지 음식은 한국 내 중국집 음식과 맛이 다르다. 모처럼 중국 여행을 간 한국인들이 “중국 음식은 냄새가 나서 못 먹겠다”며 여행기간 내내 고추장과 김치를 끼고 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중국 음식에 아예 젓가락조차 대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만약 한국에 온 외국인이 김치 냄새가 심하다고 해서 김치를 먹지 않는다면 ‘한국을 여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중국산이라고 하면 무조건 깔보는 사람도 있다. 서해(西海)의 물고기는 한국 어부가 잡은 것이든 중국 어부가 잡은 것이든 똑같다. 심지어 중국 어부가 잡아서 한국 어선에 넘겨주는 경우도 많다. 똑같은 백두산 잣을 중국산·북한산으로 구별하는 것도 우습다.

법규 모르는 사업가일수록 ‘관시(關係)’에 의존
중국어 모른 채 엉터리 통역 의존 ‘묻지마’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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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대중(對中) 투자도 ‘중국에 관한 상식 부족’을 드러낸다. 대기업은 일찍부터 사내에 중국전문가를 양성하고 합법적 절차를 밟아 투자하기 때문에 실패율이 낮지만,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먼저 중국어를 전혀 못하면서 중국에 투자하겠다고 덤비는 것처럼 무모한 일도 없다.

 

이런 사람은 조선족 동포 직원을 통역으로 쓰게 마련인데, 조선족 동포는 한국식 용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한국 측 의사를 중국 측에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다. 양측의 협상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때로는 서로 간에 불편한 내용을 통역에서 일부러 빠뜨리기도 하고, 한국인에게 불리한 계약조건을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투자했다가는 십중팔구 실패한다.

 

중국을 잘 모르는 사업가일수록 법률이나 규정을 외면하고 ‘관시(關係·개인 간 사적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믿던 관시가 끊어지면 1~2년 만에 빈털터리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 사업가들은 한 사람이 한 실패를 다른 사람이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IMF 직후인 1990년대 말 많은 한국인이 중국의 서비스업종에 진출하기 위해 명퇴금을 들고 중국으로 달려갔다. 당시 식당·의류판매점·미용실·슈퍼마켓 등은 외국인에게 개방되지 않은 상황. 부득이 조선족 동포 등 현지인의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현지인에게 고스란히 빼앗기는 사례가 속출했다.

 

투자에 실패한 한국인은 주변에 알려지는 것이 창피하고 또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남과 공유하지 않는다. 한국에 ‘실패학’이 드문 이유다. 한국에서 중국 사업 실패 경험을 담은 책은 전 언론인 손석복씨의 ‘중국 가서 망하는 법’ 정도이다. 정부 차원의 중국 투자 법률서비스나 분쟁해결 등도 미흡하다. 한국기업의 중국 투자 성공률이 미국·일본 등보다 낮은 이유다.

 


조선족 동포에 대한 이해 수준도 낮아
무조건 믿거나 무조건 배척하거나

 

중국 내 한국 기업의 중요한 조력자인 조선족  동포에 대한 이해 수준도 낮다. 어떤 사람은 조선족 동포를 무조건 믿기도 하고, 반대로 무조건 배척하기도 한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겠다.

 

‘만약 한국팀과 중국팀이 축구경기를 한다면 조선족 동포는 어느 팀을 응원할까?
①중국팀 ②한국팀 ③사람에 따라 다르다

 

답은 ③이다. 중국 중화서국(中華書局) 사전부 주임이자 칭화(淸華)대학 중문과 객원교수인 정인갑 교수에 따르면, 구한말 만주로 이주한 조선족 동포 1세대(나이 90~100)와 그들의 자녀인 2세대(70~80), 그리고 3세대(50~60)는 예외 없이 한국팀을 응원하지만 5세대(10~20) 이후부터는 중국을 응원한다는 것이다. 그 중간의 4세대(30~40)는 반반으로 갈리는데, 만약 그 사람이 조선족 동포 집결지에 살면 한국팀을, 중국인 집결지에 살면 중국팀을 응원한다고 한다. 이처럼 조선족 동포도 나이, 지역, 학력에 따라 성향이 다르다. 정 교수는 “20대 이하의 조선족 동포는 인정으로 보나 자기의 이익을 위한 도리로 보나 한반도와 ‘굿바이’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현지 학교 사정 모른 채 보낸 조기유학
부적응·탈선으로 이어질 뿐

 

중국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중국 조기유학생들의 탈선이다. 중국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초·중·고생 자녀를 중국에 보내는 부모가 많아졌다. 유학비용도 만만치 않아 학비와 기숙사비를 포함해 연간 1000만원을 넘기 일쑤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중국 현지의 사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들을 보낸다. 중국 학교 가운데는 교육환경이 좋은 곳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도 많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중국어를 미리 배우지 못하고 가는 아이들에게 중국인 교사의 수업은 ‘잠자는 시간’이다. 중국어를 1년 이상 공부해도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마당에 몇 달 공부해서 수업 내용을 이해할 리가 없다. 그러니 아이들은 아예 수업을 빼먹거나 잠을 잔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영어가 안 되는 외국 학생에게 별도의 영어교육을 시키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현지 중국 학교의 한국인 교사도 자격증이 없는 교사가 많다. 유학반을 운영하는 한국인 업체가 영세해 우수한 교사를 확보하지 못하고 무자격 유학생이나 현지 학원 강사 등을 쓰기 때문이다. 수업이 없는 토·일요일 한국 아이들은 방치된 채로 시간을 보낸다. 일부 한국 청소년이 동거나 범죄로 빠져드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중국 사정을 잘 모른 채 아이를 보내면 자녀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의 중국 이해 수준이 낮은 것만은 아니다. 삼성·LG·포스코 등 대기업과 탄탄한 중소기업들이 중국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중국인의 가슴을 뛰게 하는 한류(韓流) 문화 콘텐츠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비관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더 잘하면 된다. 문제는 그동안 개인과 기업·정부가 축적한 정보가 흩어져 있어, 국민 전체의 중국 이해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개인이 특정 중국 정보를 얻으려면 발품을 많이 팔아 전문가를 찾아다니고 인터넷 서핑을 해야 한다. 중국어를 모르면 중국 현지 정보 접근이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흩어져 있는 중국 정보를 모아 개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중국정보센터’ 같은 것을 건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경제정보와 법률서비스는 정부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 많다.

 

 

올림픽으로 차이나 열풍 더 거세질 것
실패 토대로 철저하게 준비하고 접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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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지구촌에 ‘차이나 열풍’이 거세게 불 것이다. 중국을 찾는 한국인도 폭증할 것이다. 그때도 수백만 한국인은 똑같은 식당에 가서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기념품 가게에서 똑같이 바가지를 쓸 것인가. 천편일률적인 관광문화는 끝내야 한다. 각자의 관심분야를 가지고 중국에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 사람이 경험한 투자 실패를 다른 사람이 반복할 것인가. 실패 경험의 공유와 철저한 사전준비로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난 15년간 그런 식으로 무모하게 덤벼들었다가 낸 ‘학비’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 골퍼들의 중국 골프여행도 자제해야 한다. 힘들게 번 달러가 중국 골프장과 술집에서 술술 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아편전쟁 이후 150년 만에 중국은 부활했다. ‘한국인의 중국 이해도’를 한 단계 도약시켜야 할 때가 왔다. 개인과 기업·정부 모두 중국을 더 연구하고, 이를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와 자녀 세대가 13억 중국인과 평화롭고 대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

 

“당신은 중국을 얼마나 아는가?

 


우리는중국을 몰라도너무 모른다

 

당신은 중국을 얼마나 아는가
다음 설명이 맞으면 O, 틀리면 X표 하시오.

 

1. 중국에도 자장면이 있다. (   )
2.
중국인들은 맥주보다 배갈(白干)을 좋아한다. (   )
3.
중국에서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학을 갈 수 있다. (   )
4.
중국에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다. (   )
5.
중국에서 외국인 여행자도 아파트를 살 수 있다. (   )

 

이상의 질문 가운데 당신은 몇 개를 대답할 수 있는가? 만약 4~5문항에 대답할 수 있다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중국전문가’란 말을 들을 만하다. 2개 이상 맞혀도 중국에 대한 상식이 풍부한 사람이다. 1개 이하면 중국에 대해 좀 더 공부할 필요가 있다.

 

정답을 말하면, 1번은 ○다. 중국의 산둥성(山東省)이나 산시성(陝西省)에 가면 ‘자장미엔(炸醬面)’이라고 불리는 음식이 있다. 맛은 한국식 자장면과 다르지만 면에 소스를 얹어 비벼 먹는 것은 같다.

 

2번은 ×다. 중국은 지방에 따라, 또 연령대에 따라 좋아하는 술이 다르다. 가령 베이징(北京) 이북의 북방 사람은 반주로 독한 배갈(중국에서는 바이주(白酒)라 부른다)을 좋아하지만, 남방으로 내려갈수록 소홍주나 맥주 등 도수가 낮은 술을 좋아한다. 요즘 중국 대학생들도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맥주 마시는 것을 선호한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배갈을 좋아한다’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문제 3번의 답도 ×다. 중국에서 대학(2년제 포함)에 진학하는 청소년 비율은 15% 미만이다. 나머지 85%의 청소년은 중ㆍ고등학교만 마치고 사회로 나와야 한다. 이는 대학 정원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대학 입학 경쟁은 한국보다 치열하다. 요즘 한국 대학에 중국 학생이 많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문제 4의 답은 ○다. 중국에서는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호구(戶口ㆍ호적)제도가 엄격해 타 지역으로 이사하기가 어려웠다. 호구가 있는 지역을 떠나면 주택ㆍ식량 배급과 무료교육ㆍ의료 등 많은 복지 혜택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ㆍ개방 이후 연해지역의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농촌에 호구를 두고 무작정 도시로 이주하는 농민노동자(農民工)가 늘어났다. 농사를 지어 얻는 소득보다 도시에서 막노동을 해 얻는 수입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문제 5의 답은 ×다. 중국은 몇 년 전까지도 부동산 경기활성화를 위해 외국인의 아파트 매입을 허용했지만 작년부터 1년 이상 거주자로 제한했다. 일주일 혹은 한두 달 중국을 여행하는 외국인은 아파트를 살 수 없다.

posted by 호호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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